잘 지은 집이 여름에 더 더운 이유, 열은 유리 밖에서 막는다

이동훈
2026.09.29

잘 지은 집인데 여름엔 오히려 더 덥다는 말, 이상하지 않나요? 제 생각엔 이상해야 정상이에요. 그런데 이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단열도 잘했고, 기밀도 잘했고, 커튼까지 꼼꼼히 달았는데 왜 여름만 되면 집이 후끈해질까요? 이유를 알고 나면 창문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질 거예요.

여름철 일사에너지가 실내로 유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중요해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L’s Passive House Talk 「차양」 편

Chapter 1.
잘 지은 집의 역설, 문제는 여름이에요

잘 지은 집은 뛰어난 단열과 기밀 성능으로 겨울철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완벽히 차단해요. 그래서 겨울엔 들어온 에너지를 잘 보존해서 집이 따뜻해지죠.

겨울(왼쪽)에는 들어온 에너지를 잘 보존해 따뜻해지지만, 여름(오른쪽)에는 같은 성능 때문에 더워진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겨울(왼쪽)에는 들어온 에너지를 잘 보존해 따뜻해지지만, 여름(오른쪽)에는 같은 성능 때문에 더워진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그런데 이 완벽함이 여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어요. 한번 실내로 들어온 열은 밖으로 빠져나가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열을 잘 가두는 집은, 여름엔 열도 잘 가두는 집이 되는 셈이에요.

그렇다면 커튼을 치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실 커튼은 답이 아니에요.

Chapter 2.
커튼을 쳐도 집이 더운 진짜 이유

태양빛은 짧은 파장, 그러니까 단파예요. 단파는 유리를 아주 쉽게 통과해요. 이 빛이 실내의 바닥이나 가구에 닿으면 열, 즉 장파로 바뀌는데요. 장파는 유리를 잘 통과하지 못해서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태양빛(단파)이 유리를 통과해 실내에서 열(장파)로 바뀌는 과정. ©제이엘건축사사무소
태양빛(단파)이 유리를 통과해 실내에서 열(장파)로 바뀌는 과정.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유리를 통과한 단파가 열(장파)로 변환된 뒤에는 실내 블라인드가 있어도 열이 실내에 남는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유리를 통과한 단파가 열(장파)로 변환된 뒤에는 실내 블라인드가 있어도 열이 실내에 남는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이미 들어온 다음에 치는 커튼이나 블라인드는 이 열을 가두는 역할밖에 하지 못해요. 오직 빛만 가려줄 뿐이죠. 커튼을 쳐도 집이 더운 진짜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Chapter 3.
정답은 ‘유리에 닿기 전에’ 막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원천 차단하려면, 창문 바깥에서부터 태양빛을 제어해야 해요.

내부차양(실내 커튼, 블라인드)과 외부차양(처마, 외부 블라인드)의 차이. ©제이엘건축사사무소
내부차양(실내 커튼, 블라인드)과 외부차양(처마, 외부 블라인드)의 차이. ©제이엘건축사사무소
구분내부차양외부차양
방법실내 커튼, 블라인드처마, 외부 블라인드
태양빛이 막히는 곳유리를 통과한 뒤 실내에서유리에 닿기 전 창 밖에서
결과들어온 열을 가두게 돼요열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아요

같은 커튼이라도 어디에 다느냐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달라져요. 실내에 달면 열을 가두는 것이고, 실외에 달면 열을 막는 거예요.

Chapter 4.
우리 집 창은 어느 쪽을 보고 있을까요?

외부 차양이라고 다 같은 방법은 아니에요. 창이 어느 방위에 있느냐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지거든요.

창호 방위태양의 고도선택할 수 있는 방법
남측높아요처마나 차양으로 디자인할 수 있어요
동향, 서향낮아요차단률이 낮아 외부차양이 필수예요 (패시브 인증 건축물)

남측 창은 태양의 입사각이 높아서 처마나 차양으로 디자인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향과 서향처럼 낮은 고도에서 들어오는 태양빛은 차단률이 낮아서, 패시브 인증 건축물의 경우 외부차양이 필수적으로 요구돼요.

솔루션 1. 처마 : 처마를 길게 빼내어 일사를 차단한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름삼간’ 주택
솔루션 1. 처마 : 처마를 길게 빼내어 일사를 차단한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름삼간’ 주택
솔루션 2. 외부 차양 : 실외측에 설치된 차양.
솔루션 2. 외부 차양 : 실외측에 설치된 차양.

그리고 에너지만 생각하면 안 돼요. 사는 사람의 생활 패턴과 감성적인 부분도 중요하잖아요. 이 부분까지 잘 고려해서 설계에 반영하는 걸 추천드려요.

Chapter 5.
태양의 궤적으로 그리는 처마

처마는 단순히 지붕을 길게 빼는 게 아니에요. 태양의 움직임을 읽고 그리는 거죠. 위도 37.5도, 우리나라 중부지방 표준 위도를 기준으로 태양의 남중고도는 계절마다 드라마틱하게 변해요.

절기태양 남중고도
하지76°
춘추분52.5°
동지29°
서울·경기 기준 계절별 태양 남중고도. 하지(76°)와 동지(29°)의 차이가 크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서울·경기 기준 계절별 태양 남중고도. 하지(76°)와 동지(29°)의 차이가 크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가장 높이 뜨는 하지(76도)와 가장 낮게 깔리는 동지(29도)는 고도각이 47도나 차이 나요. 이 자연의 궤적을 처마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어요.

솔루션 1. 처마 디자인 사례.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름삼간’ 주택
솔루션 1. 처마 디자인 사례.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름삼간’ 주택

Chapter 6.
처마 없이 태양빛을 막는 방법

처마를 낼 수 없는 경우엔 어떻게 할까요? 외부 차양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많이 쓰이는 건 두 가지예요.

방식특징
외부 전동 블라인드(EVB)구조체에 고정해요
창호 일체형 블라인드말 그대로 창호에 붙어 있어요
외부 전동 블라인드. 실외측 외벽에 블라인드가 설치된다.
외부 전동 블라인드. 실외측 외벽에 블라인드가 설치된다.
창호 일체형 외부 블라인드. 실외측 창호에 블라인드가 설치된다. 제품: 앤썸 창호 일체형 시스템 창호
창호 일체형 외부 블라인드. 실외측 창호에 블라인드가 설치된다. 제품: 앤썸 창호 일체형 시스템 창호

어떤 걸 고를지는 외관 디자인, IoT 조절이 필요한지, 예산, 그리고 유리 관리 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선택해요.

패시브하우스 ‘HOUSE SAN’ 창호 일체형 외부 블라인드 적용 사례.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HOUSE SAN’ 인터뷰 중 캡처
패시브하우스 ‘HOUSE SAN’ 창호 일체형 외부 블라인드 적용 사례.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HOUSE SAN’ 인터뷰 중 캡처

L의 생각
열을 담아 두는 만큼, 열을 막는 것도 설계예요

맨 처음 던졌던 질문에 답해 볼게요. 잘 지은 집이 왜 여름엔 더울까요?

제 생각은 이래요. 열을 잘 담아 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불필요한 열을 잘 차단하는 거라고요. 겨울철에 열을 지키는 설계를 했다면, 여름철에 열을 막는 설계도 같은 무게로 해야 한 세트가 돼요.

그래서 저는 커튼을 고르기 전에 창 밖을 먼저 보라고 말씀드려요. 처마와 차양은 나중에 덧붙이는 게 아니라, 창을 그릴 때 함께 그려야 하는 거니까요.

차양을 계획할 때는 이 세 가지를 꼭 체크해보세요.

  1. 창의 방위에 맞게 처마와 외부 차양을 나누어 계획했는가
  2. 하지와 동지의 태양 고도를 고려해 처마를 디자인했는가
  3. 동향, 서향 창에는 외부 블라인드를 함께 계획했는가

이 세 가지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여름에도 쾌적한 집이 될 가능성이 커요.

아는 만큼 보이는 집 이야기,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