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걷어도 되는 마당, 사선 가벽 하나로 만들다

이동훈
2026.09.29

햇볕 잘 드는 남향에 마당을 크게 뽑았는데, 정작 낮에도 커튼만 치고 사는 집.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제 생각엔 이상한 게 맞아요.

마당은 집을 지을 때 가장 큰 마음을 먹고 남겨 두는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그 마당이 커튼 뒤에서 잊혀 버린다면, 저희는 그게 늘 아깝게 느껴져요. 오늘은 그 마당을 되찾아 주는 ‘외부 가벽’ 이야기를 해볼게요.

시선은 가리고 하늘은 열어서 답답하지 않아요. 외관은 형태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L’s House Talk 「외부 가벽」 편

Chapter 1.
남향 마당인데, 왜 커튼만 치고 살까요?

조망 좋은 공원 앞인데 시선이 자꾸 신경 쓰이고, 공공시설과 가까워서 좋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나다니고. 이런 대지에 사시는 분들,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창가에서 바깥 시선을 살피며 커튼을 치게 되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창가에서 바깥 시선을 살피며 커튼을 치게 되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저희는 도심지 단독주택 설계를 많이 해왔어요. 택지지구 대지를 가 보면 열 집 중 아홉 집은 낮에도 커튼을 치고 있답니다. 눈에 익숙한 풍경이라 어색하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정된 자원에서 뚝 잘라내어 만들어 준 귀중한 마당이 낮에도, 특히 밤에도 활용되지 못하는 모습은 저희에게 무척 어색해 보여요.

흔한 택지지구 주택가의 풍경. AI 생성 이미지.
흔한 택지지구 주택가의 풍경. AI 생성 이미지.

밤에는 오히려 안이 더 훤하게 들여다보이니까요. 그래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외관의 일체감을 잃지 않는 디자인 요소, 외부 가벽을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Chapter 2.
지붕에서 마당까지, 선 하나로 이어 봤어요

남향 마당은 빛이 잘 들고 넓고 환한 느낌이에요. 그런데 주변의 시선이 그대로 들어온다면 신경이 쓰여서 결국 커튼을 치고 살아야 하는 답답한 공간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지붕부터 마당까지 이어지는 사선 가벽이에요. 지붕의 선이 그대로 흘러내려 마당을 감싸는 거죠. 외관은 형태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선은 가리고 하늘은 열어서 답답하지 않게요.

지붕부터 마당까지 이어지는 사선 가벽의 개념도.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지붕부터 마당까지 이어지는 사선 가벽의 개념도. ©제이엘건축사사무소

밖에서 봤던 그 벽이 사실은 시선을 가려 주는 벽이었던 셈이에요. 마당에는 안정감이 생기고, 햇볕이 쨍한 날에는 그늘까지 만들어 줘요.

내 집을 감싸는 벽. 시선은 가리고 안정감은 더한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하우스산’
내 집을 감싸는 벽. 시선은 가리고 안정감은 더한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하우스산’

Chapter 3.
걸을수록 열리는 벽, 딱 필요한 높이

그렇다면 담장을 건물 높이까지 쭉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건물 높이로 꽉 막으면 오히려 답답해요. 안에서 바라볼 때 시선이 짧게 맺혀 버려서 폐쇄감을 은근히 주게 되거든요.

그래서 대각으로 서서히 열어 줘요. 걸어가면서 닫혀 있던 부분이 열리고, 가까이 오면 오히려 안이 안 보이는 벽이 되죠. 사선으로 하늘과 마당을 적절히 보여 주면 폐쇄감은 덜고 안정감은 얻을 수 있어요.

가벽 높이에 따른 안정감과 개방감.
가벽 높이에 따른 안정감과 개방감. ©제이엘건축사사무소

Chapter 4.
사선에 곡선을 더하면 느낌이 달라져요

같은 가벽이라도 선이 달라지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다른 사례를 볼까요? 지붕에서 2층 베란다까지 곡선 하나로 이어 준 집이에요. 밖에서는 닫혀 있지만, 안에서는 열려 있어요.

지붕부터 2층 베란다까지 곡선으로 이어진 가벽. 밖에서는 닫혀 있고 안에서는 열려 있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루체테’
지붕부터 2층 베란다까지 곡선으로 이어진 가벽. 밖에서는 닫혀 있고 안에서는 열려 있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루체테’
곡선 가벽이 있는 주택의 전경.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루체테’
곡선 가벽이 있는 주택의 전경.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루체테’

Chapter 5.
2층 베란다도, 도로 쪽도 안심이에요

사선이 지붕에서 쭉 이어져 베란다와 마당까지 든든하게 실내를 지켜 주는 사례도 있어요. 하나의 선이 두 공간을 감싸는 거예요.

지붕에서 이어진 사선이 베란다와 마당까지 감싼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지붕에서 이어진 사선이 베란다와 마당까지 감싼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2층 베란다에 나와도 도로 쪽 보행자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아요. 이웃집 2층에서 넘어오는 측면 시선까지 자연스럽게 가려 주고요. 그래서 베란다에 편하게 나와 계실 수 있어요. 도로의 소음도, 이웃의 시선도 한결 자유로워져요.

2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모습. 도로 쪽 시선과 측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려진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2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모습. 도로 쪽 시선과 측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려진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사선 가벽과 지붕이 만들어 주는 베란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사선 가벽과 지붕이 만들어 주는 베란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Chapter 6.
건축디자인이면서, 패시브건축이기도 해요

여기까지 읽고 나면 외부 가벽이 디자인 이야기로만 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이걸 패시브건축과 떼어서 생각하지 않았어요.

패시브건축에서 남향은 겨울철 햇볕을 집 안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이에요. 태양의 남중고도가 동지에는 29도까지 낮아지니까, 겨울 햇볕은 마당을 지나 깊숙이 들어오죠. 그런데 시선이 신경 쓰여서 낮에도 커튼을 쳐 두고 산다면, 그 햇볕을 받아들이는 창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커튼으로 막는 대신 벽으로 시선을 정리해 주는 거예요. 시선은 벽이 막고, 하늘과 햇볕은 열어 두는 거죠. 사선으로 하늘을 열어 주는 형태는 답답함을 덜어 주는 동시에 빛이 들어올 길도 남겨 둬요.

태양광 패널이 얹힌 지붕이 이어지는 주택가. 지붕의 선이 곧 집의 성능과 형태를 함께 만든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태양광 패널이 얹힌 지붕이 이어지는 주택가. 지붕의 선이 곧 집의 성능과 형태를 함께 만든다.
출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자유채’

저희는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은 그대로 담으면서도, 커튼 없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적정 높이를 현장마다 연구하고 있어요. 가벽이 하나의 용도로만 쓰여서 낭비되지 않도록, 지붕에서부터 연결해 입면 전체를 구성하는 게 저희의 방법이에요.

L의 생각
커튼을 걷어도 되는 마당이 잘 지은 마당이에요

이제 글머리의 질문에 답을 드려 볼게요. 남향 마당인데 왜 커튼만 치고 살까요?

제 생각은 이래요. 따뜻하고 밝고 넓은 남향 마당은 좋지만, 내가 즐기고 사용하기 어렵다면 그건 반쪽짜리라고요. 마당을 만들 때 프라이버시를 함께 그려야, 그 마당이 낮에도 밤에도 쓰이는 공간이 돼요.

그래서 저는 마당을 그리기 전에 그 마당을 누가 볼지부터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려요.

남향 마당을 계획할 때는 이 세 가지를 꼭 체크해보세요.

  1. 마당을 마주 보는 도로, 이웃집 창, 공공시설의 시선을 살펴봤는가
  2. 적절한 위치에 시선을 가릴 차폐 시설을 고려했는가
  3. 건물 높이로 막지 않고, 하늘과 햇볕이 들어올 만큼 열어 두었는가

이 세 가지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커튼 없이도 편안한 마당이 될 가능성이 커요.

아는 만큼 보이는 집 이야기,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