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마당 하나보다, 방마다 지켜지는 작은 마당

이동훈
2026.10.10

이 집의 건축주님은 이 땅에서 이미 7년을 사셨어요. 새로 지을 땅을 찾아온 게 아니라, 살던 땅에 다시 집을 지으신 거예요.

그럼 그 전의 집은 어떻게 됐을까요? 방수와 시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목조주택이었어요. 비가 밖에서도, 안에서도 새어 들었어요. 집 안에는 냄새가 배고 구조체는 약해져서, 결국 더는 살 수 없는 집이 되어 버렸죠.

뼈아픈 실패였지만, 덕분에 이 가족은 주택에 살면서 무엇이 아쉬웠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분명하게 알고 있었어요.

  • 넓은 마당보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마당
  • 다닥다닥 붙은 풍경보다, 살짝 띄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풍경
  • 하자를 겪어 봤기에, 최대한 하자 없는 집
  • 필요한 시설과 공간이 많기에, 잘 짜인 평면

식구도 많았어요. 자녀들, 건축주 부부, 그리고 연로하신 부모님까지 세 세대가 함께 사는 집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어 드리는 데 더 마음을 썼어요.

도심 속 좁은 땅에서 마당을 어떻게 나눠야 가족 모두가 쓸 수 있을지 궁금한 분이라면 끝까지 읽어 보세요. 아산 자유채 이야기예요.

Chapter 1.
크게 하나 만든 남향 마당, 왜 잘 안 쓰게 될까요?

마당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아마 남쪽으로 시원하게 열린 넓은 마당 하나일 거예요. 땅이 넉넉한 시골이라면 좋은 답이에요. 그런데 이웃집이 바짝 붙어 있는 도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져요.

크고 탁 트인 마당은 그만큼 주변의 시선에도 활짝 열려 있어요. 낮에는 옆집 창문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이 신경 쓰여 막상 나가서 쓰기가 어려워요. 밤이 되면 집 안이 밖에서 훤히 보이니 커튼을 치게 되고요. 결국 마당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잘 안 쓰는 공간이 되어 버려요.

마당이 하나뿐이면 생기는 문제가 하나 더 있어요. 그 마당에 붙은 방은 한두 개뿐이라는 거예요. 거실에서만 보이고, 나머지 방에서는 그저 담장 너머 남의 풍경일 뿐이죠.

반대로 시선으로부터 잘 지켜지는 마당은 정말 자주 쓰여요. 그래서 자유채는 한정된 땅을 크게 하나로 쓰는 대신,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작은 마당들로 나눠 방마다 하나씩 나눠 주기로 했어요.

Chapter 2.
가로로 길게 늘인 마당, 방마다 한 칸씩

마당 하나를 가로로 길게 늘였어요. 그리고 식당, 거실, 안방이 그 긴 마당을 차례로 나눠 갖게 했어요. 같은 면적이라도 방과 마당이 만나는 접점이 훨씬 늘어나요.

마당과 실의 접점을 늘려주는 배치 다이어그램
식당, 안방, 거실, 방 — 마당과 실의 접점을 늘려 주는 배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식당의 마당은 처마를 길게 빼고 툇마루1를 두었어요. 비 오는 날에도, 해가 뜨거운 날에도 편하게 나가 앉을 수 있어요.

건축주님들께 살아 보신 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망 좋고 탁 트인 곳보다 한쪽 벽이 막혀 안전하게 느껴지는 ‘ㄷ자’ 공간을 더 자주 쓴다고 하세요. 그래서 식당 앞은 길게 뻗은 마당에서 오목하게 들어온 중정2으로 만들었어요.

1 툇마루 방이나 거실 바깥쪽에 덧대어 놓은 좁고 긴 마루예요. 안과 밖 사이에서 걸터앉는 자리가 돼요.
2 중정 건물에 둘러싸인 안쪽 마당이에요. 바깥 시선에서 한 겹 떨어져 있어 마음 편히 쓸 수 있어요.

처마와 툇마루가 있는 식당의 마당
처마와 툇마루로 날씨와 상관없이 쓸 수 있는 식당의 마당.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ㄷ자 모양으로 오목하게 들어온 식당의 마당
한쪽 벽이 막혀 안전한 ㄷ자 모양의 식당 마당.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거실은 중정과 긴 마당, 두 면을 모두 접하게 했어요. 가족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니 풍경도 두 개를 갖게 한 거예요.

중정과 마당 두 면을 접한 거실
중정과 긴 마당, 두 개의 풍경을 함께 가진 거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안방은 이 집에서 가장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곳이에요. 그래서 안방 앞 마당은 다음 장에서 이야기할 사선가벽이 한 번 더 감싸 주도록 했어요. 마당이 거실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서, 중정을 거쳐 집 전체를 산책하듯 걸을 수도 있어요.

사선가벽이 보호해주는 안방의 마당
사선가벽이 한 번 더 지켜 주는 안방의 마당.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Chapter 3.
담을 높이는 대신, 사선가벽

마당을 나눴다고 끝이 아니에요. 그 마당이 시선으로부터 지켜져야 실제로 쓰여요. 흔히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면 담을 높이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담을 쭉 올리면 마당이 우물 바닥처럼 갑갑해지고, 결국 또 안 쓰게 돼요.

그래서 자유채는 높은 담장 대신 JLA의 시그니처인 사선가벽을 세웠어요. 2층 베란다 끝의 지붕에서 시작한 사선이 그대로 마당까지 흘러내려 오면서, 안방과 그 앞 마당을 감싸 줘요. 사선가벽을 어떻게 계획하는지는 커튼을 걷어도 되는 마당, 사선 가벽 하나로 만들다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어요.

사선가벽으로 마당과 베란다를 함께 지키는 아산 자유채의 외관
사선가벽으로 마당과 베란다를 함께 지키는 아산 자유채의 외관.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2층 베란다 끝 지붕에서부터 사선으로 떨어지는 벽
2층 베란다를 감싸 주는 사선가벽. 베란다 끝부분 지붕에서부터 사선으로 떨어지는 벽이에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이 벽은 완전히 막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는 지켜 줘요. 방 안에 앉아 있으면 개방감이 있고, 밖으로 나오면 살짝 가려지는 느낌이 들어요.

안방의 경사천장은 사선가벽과 각도를 맞췄어요. 그래서 바깥의 벽이 방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나 밖이 깜깜한 밤에, 그 든든함이 더 크게 다가와요. 밤에도 커튼을 다 닫지 않아도 되는 방이 되는 거예요.

사선가벽이 안방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
사선가벽과 같은 각도의 경사천장이 안방을 감싸 줘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Chapter 4.
1층에서 모자란 마당, 2층 베란다로 채우다

세 세대가 사는 집이라 넣어야 할 방이 많았어요. 1층 마당만으로는 모든 방에 바깥을 나눠 주기가 부족했죠. 그래서 2층에 두 번째 마당을 만들었어요. 바로 베란다예요.

평평한 지붕 위에 만드는 베란다는 방수가 가장 큰 숙제예요. 비가 새는 집을 겪어 본 가족이니 더 그랬어요. 그래서 역전지붕3 방식으로 방수층을 단열재 아래에 두어, 햇빛과 온도 변화로부터 오래 보호받도록 했어요.

2층 베란다를 활용한 아산 자유채
1층에서 모자란 마당을 채워 주는 2층 베란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베란다도 그냥 열어 두면 옆집도, 도로도 다 보여요. 그렇다고 꽉 막으면 답답하고요. 그래서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 살, 간살4을 짜 넣었어요. 시선은 걸러 주고, 바람과 빛은 그대로 통하게요.

3 역전지붕 보통은 단열재 위에 방수층을 덮는데, 그 순서를 뒤집어 방수층 위에 단열재를 얹는 방식이에요. 방수층이 햇빛과 온도 변화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 더 오래가요.
4 간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 댄 가는 나무나 금속 살이에요. 발처럼 시선은 거르고 빛과 바람은 통하게 해요.

간살 디자인의 2층 베란다
시선은 열어 주고 프라이버시는 지켜 주는 간살 디자인 베란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간살 사이로 빛이 드는 베란다
간살 사이로 빛과 바람만 골라 들어오는 베란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베란다는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처마가 있는 바깥 복도로 방-1, 방-2, 가족실을 차례로 이었어요. 비가 와도 젖지 않고 이 방 저 방을 오갈 수 있고, 2층의 방들도 저마다 바깥 풍경을 하나씩 갖게 돼요.

처마가 있는 외부 복도
베란다를 이어 주는, 처마가 있는 바깥 복도.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방과 방을 잇는 외부 복도
방과 방 사이를 비 걱정 없이 이어 주는 복도.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방-1, 방-2, 가족실을 잇는 외부 복도 배치도
방-1, 방-2, 가족실을 순환하며 잇는 바깥 복도 배치.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건축은 3차원 공간에 더해 ‘사람이 걸어가는 시간’까지 고려한 4차원의 설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베란다 끝으로 갈수록 사선가벽이 낮아지도록 한 것도 그래서예요. 안쪽에서는 아늑하게 보호받고, 바깥쪽으로 걸어 나갈수록 전망대처럼 시야가 탁 트여요. 프라이버시의 농도를 내가 서는 자리로 고를 수 있는 거죠.

전망대처럼 시선이 열리는 베란다 끝
앞으로 갈수록 전망대처럼 시선이 열리는 베란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방마다 외부 풍경을 이어주는 순환 동선
베란다로 방마다 바깥 풍경을 만들어 주고, 한 바퀴 도는 바깥 동선을 만들었어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Chapter 5.
빛도 나눠 받는 집, 주방 뒤 계단실까지

마당을 방마다 나누는 마음은 빛에도 그대로 이어졌어요. 사방이 이웃집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땅은 빛을 들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계단실이나 설비실처럼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공간은 더 그렇고요.

빽빽한 도심 속 빛을 들이는 아산 자유채
빽빽한 도심 속, 집 안쪽 깊숙이 빛을 들이는 아산 자유채.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다닥다닥 붙은 필지 위에 선 도심 속 단독주택
다닥다닥 붙은 필지 위에 선 도심 속 단독주택. 사방이 이웃집이라 빛을 들이기가 어려워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자유채는 주방 뒤편 계단실까지 한 줄기 빛을 끌어들였어요. 비결은 2층 높이의 벽에 낸 적당한 크기의 사각 창, 그리고 그 빛이 바닥까지 닿도록 비워 둔 보이드5예요. 창이 높을수록 빛은 집 안쪽 깊숙이 들어와요. 낮에는 전등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밝아요.

5 보이드 위아래 층 사이의 바닥을 일부러 뚫어 비워 둔 공간이에요. 위층 창으로 들어온 빛이 아래층까지 내려올 수 있는 통로가 돼요.

벽면 높은 곳에 위치한 창
벽면 높은 곳에 낸 창이 빛을 더 깊숙이 들여 줘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2층 높이 창과 보이드 공간
2층 높이에 낸 창과, 빛이 바닥까지 닿도록 비워 둔 보이드.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한 줄기 빛이 드는 계단실
한 줄기 빛으로 전등 없이도 밝은 계단실.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이 빛은 밝기만 채우는 게 아니에요. 시간에 따라 빛이 벽을 타고 움직이면서 공간에 여러 표정을 만들어요.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루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거죠.

집 안쪽까지 빛을 들여주는 해법
집에서 제일 안쪽까지 빛을 깊숙이 들여 주는 해법.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표정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표정.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한 줄기 빛으로 소외되는 공간 없이 배려된 집
조건이 열악한 도심 속 주택이지만, 한 줄기 빛으로 소외되는 공간이 없도록 했어요.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L의 생각
마당은 크기보다, 프라이버시를 잘 보호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도심의 한정된 땅에서 남향 마당을 하나로 크게 만들면, 주변 시선 때문에 오히려 쓰임이 줄어들어요. 방마다 골고루 나눠 주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자유채에서는 마당을 나누고, 프라이버시를 지켰어요. 마당을 가로로 길게 늘여 방마다 하나씩 나눠 주고, 사선가벽으로 시선을 걸렀어요. 부족한 마당은 2층 베란다로 2층의 마당을 만들어 채우고, 계단실까지 빛을 나눠 줬어요. 어느 방에서든 안에서 바깥으로 편안하게 공간을 넓혀 쓸 수 있도록요.

방마다 여백을 남겨주는 가로로 긴 마당
방마다 조금의 여백을 남겨 주는, 가로로 긴 마당이 있는 집.
©제이엘건축사사무소, 아산 자유채

7년을 살아 본 가족이 알려 준 건, 넓은 마당이 아니라 마음 놓고 나갈 수 있는 마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마당을 그리기 전에, 커튼을 열고 사용하기에도 부담 없을 만큼 잘 보호받는 마당인지부터 먼저 따져 봐요.

도심에서 마당 있는 집을 계획할 때 챙겨 볼 3가지

  1. 마당을 크게 하나로 만들기보다, 모든 방이 바깥으로 편안하게 넓혀 쓸 수 있도록 나눠 보세요.
  2. 낮에는 나가 쓸 수 있고 밤에는 커튼을 열어 둘 수 있도록, 사선가벽이나 간살로 시선을 걸러 보세요.
  3. 2층 베란다로 마당을 대신한다면, 역전지붕 같은 오래가는 방수와 평지붕을 버틸 구조부터 챙겨 보세요.

우리 가족이 편하게 나설 수 있는 마당은 어떤 모습일지, 한 번 그려 보세요.

아는 만큼 보이는 집 이야기,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